연구소장
신동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에서는 일찌감치 우리 연구소에서 펴내는 한국과학문명사 총서 영문판의 명칭을 ‘한국의 과학과 문명’으로 정했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조지프 니덤의 역작 ‘중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와 격을 맞추고자 한 것입니다. 막강한 중국문명 곁에 서 늘 드높은 과학문명의 수준을 유지한 비밀은 무엇일까요? 게다가 20세기 들어 35년간의 식민지 상태, 이어서 전 국토가 폐허가 된 전쟁을 겪은 처지에서 불과 50여년 만에 주요 산업기술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한국의 오랜 역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도약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현대 한국의 과학기술이 이런 산업 발전을 추동한 주요 요인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한국 문명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고고학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역사 기록이 등장하는 기원후 1세기 이후부터 한국 과학문명의 흔적이 본격적으로 포착되기 시작됩니다. 문자 시대이후 2,000여 년 동안 한자 문명권에 포함되면서 사상, 종교, 국가제도, 문화, 예술 등의 모든 분야에서 한자문명권의 본국인 중국과 견줄 수 있는 높은 문명 수준을 유지해왔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중국과 견줄 수 있는 문화 강국이 되었고,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역시 놀랄만한 과학기술 수준을 세계사에 과시하였으며, 조선 건국 직후인 세종 때에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조선 후기 영·정조 치세 때에는 선진 중국과 서양의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한 노력이 쉬지 않고 벌어졌습니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오늘날의 놀라울만한 과학기술 발전도 이러한 외부세계의 큰 자극에 대한 역동적인 한국문명사적 대응 패턴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응축된 문명의 에너지가 늘 새로운 엄청난 변화에 대한 슬기로운 대응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한국과학문명의 장기적인 패턴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 구체적인 활동을 확인하는 작업을 수행해왔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국내 중견 연구자 다수가 참여한 「한국과학문명사 총서」(10년 과제: 국문판 30권, 영문판 7권) 작업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으로 한국현대과학문명의 기본 자료인 「한국 과학기술인물 아카이브」(5년 과제)도 구축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으로 COVID-19 유행이후 한국 방역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현상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연구인 「과학·보건·사회의 초국적 공진화로 본 한국현대사」(6년 과제) 프로젝트를 새로이 시작했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국내외 유일한 한국과학문명을 연구하는 연구기관입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현재 한국문명의 좌표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문명의 장기적인 비전 모색의 나침반 구실을 할 것입니다.